문학 서평

[서평] 『노인과 바다』'인간은 파멸될지언정 패배할 수 없다'

LISASHIN 2021. 8. 5. 10:45

* 본 글은 남편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독후감 대회에 응모하여 수상을 한 작품입니다.

* 책을 읽고 성장하는 가족이 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파멸될지언정 패배할 수 없다'

마흔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의 전환점에 온 것 같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고민은 사춘기 때 끝내야만 할 것 같은데, 아직도 머릿속이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수풀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우거진 수풀 끝자락에 작은 빛과 같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만났다.

서른의 끝자락이었던 작년, 운 좋게도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생이 되니 일터에 있을 때보다는 삶이 조금은 단조로워졌고, 또한 묵직한 학문의 무게에 조금은 겸손해졌다. 책을 잡아본 지도, 밤늦게까지 리포트나 시험공부와 씨름을 한 지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궁둥짝을 붙이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꽤 힘이 든다. 아. 공부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지. 중학생 딸에게 잔소리했던 일들이 사뭇 미안해진다. 공부하는 김에 아이들에게 책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마음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등지고 살았다. 독서광인 아내의 책장을 뒤적거리다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노인과 바다’

비췻빛 바다와 우아하고 거대한 물고기 사이에 돛을 단 작은 배가 말끔하게 그려진 작은 책이다. 뒤표지에는 헤밍웨이의 명언이 쓰여있다.

 

‘인간은 파멸될지언정 패배할 수 없다.’

 

책을 읽기 전 나에게 묻는다.

나는 패배 될지언정 파멸을 택하는 인간인가. 혹은 매 순간을 패배감에 절어 사는 지질한 인간인가. 잘 모르겠다. 한 걸음씩 늙어갈 앞으로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쩌면 이 고기잡이 노인이 나에게 그 길을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노인을 ‘살라오’라고 불렀다. 최대의 불운, 운이 막혀 재수가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84일 동안이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의 돛은 밀가루 부대로 여기저기 기워져 있어서 마치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 같다. 노인의 몸은 두 눈을 제외하고는 낡은 배와 같이 오랜 상처와 세월로 모두 늙어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찬란했던 젊은 날이 왜 없었겠는가. 해변을 어슬렁거리는 사자가 있는 아프리카 해안까지 항해하던 선원이었던 나날도 있었으며, 몸집이 큰 흑인과 팔씨름을 해서 이겼던 챔피언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사자의 꿈을 꾼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낡은 배와 낚싯대를 가지고 언제나처럼 묵묵히 바다로 나간다. 초록빛 해안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먼 바다로 나간 노인은 묵직한 물고기의 당김을 느낀다. 그때부터 노인은 며칠 밤낮을 이제껏 만나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거대한 물고기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승리한다. 물고기는 배보다 큰 1,500파운드를 넘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배에 싣지 못한 탓에 배 옆구리에 묶어 끌고 가다가 상어 떼의 공격을 받고 뼈만 남기고 모두 잃고 만다.

 

노인의 삶처럼 나 역시도 인생의 거대 담론 속에서 명암을 경험한다. 어떤 날은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살라오’가 되기도 하고, 챔피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인생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행운이 몰려와 기분이 우쭐해질 때는, 미래의 운을 조금 당겨쓰는 것이니 겸손하여지자고 나를 다독인다. 노인처럼 ‘살라오’가 되어버린 것 같은 날은 앞으로 올 불행을 먼저 꼭꼭 삼키고 있는 거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물고기가 상어들에게 뜯기는 모습을 보던 노인의 마음이 어땠을까는 상상하기 사뭇 버겁다. 아무리 인생에는 굴곡이 있으니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이때만큼은 세상 최고의 비관론자가 되어버렸을 것 같다. 차라리 커다란 물고기 따위는 낚는 것이 아니었다고, 먼바다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얕은 해안가에서 조개나 줍고, 잔챙이들만 낚는 삶에 만족하는 것이 더 행복했을 거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노인 역시도 잠시 절망한다. 좋은 일은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모든 게 꿈이었다고, 물고기 따위는 낚지도 못하고 혼자 침대에 누워 신문이나 보고 있다면 좋았을 그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읊조린다.

 

“생각 따위는 더는 말자, 이 늙은이야. 방향 바꾸지 말고 그냥 이대로 가는 거야. 난관이 닥치면 맞서 보는 거라고”

 

노인은 결국 물고기를 모두 상어에게 내어주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키질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큰 짐이 없어지니, 배가 가볍게 잘 달리는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노인처럼 인생에 초월할 수 있을까? 나의 노력과 성취가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졌을 때, 잃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남은 것에 감사 할 수 있을까? 어떠한 후회나 회한 없이 그렇게 그처럼 묵묵히 집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사자 꿈을 꾸며 잠들 수 있을까?

아니, 아직 나는 힘들 것 같다.

책을 덮으며 그가 진정으로 승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이 위대한 승자인 이유는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잡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높이 쌓아 올린 무엇인가가 아스라이 으스러짐에 후회나 어떠한 회한 없이 당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절대 패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진정으로 승리한 것이다.

 

올해 12월이 되면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남은 나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노인이 마주한 바다처럼 눈부시게 찬란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모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노인을 만난 지금만큼은 매 순간순간을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 마음으로 인생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라는 바다에 몸을 맡긴 채로 미풍이 불면 부는 대로, 태풍이 불면 부는 대로 다시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무엇 앞에도 꺾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헤밍웨이의 말을 되새겨본다.

‘인간은 파멸될지언정 패배할 수 없다.’ 참으 아름다운 말이지 않은가.

 

 

노인과 바다

노벨 문학상, 퓰리처상 수상 작가, 20세기 미국 문학을 개척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라 불리는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길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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